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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

[잠깐!] “핫은 어디에?” 키오스크 앞에서 멘붕 온 50대 아재의 ‘메가리카노’ 대참사

[경기남부뉴스 김정옥 기자] 비가 촉촉이 내리는 12월의 토요일 오후. 50대 중년 남편은 등산 후, 손에 쥔 유한킴벌리 발 2,000원짜리 메가커피 쿠폰을 들고 메가커피 전문점 앞에 섰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은 자신을 위한 보상,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아들을 위한 특명.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남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두 명의 중년 여성. 이분들은 가게 입구를 점령한 첨단 병기, 키오스크(Kiosk) 앞에서 마치 암호를 해독하듯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게 어디 있는 거야?"

"아니, 분명 아메리카노랬는데… 메뉴가 왜 이렇게 많아?"

손가락은 허공을 헤매고, 눈동자는 갈 곳을 잃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 역시 마음속으로 외쳤다. '남의 일 같지 않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중년 부인들은 마침내 미션을 완수하고 서로 대견하다는 듯 웃으며 다음 타자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드디어 남편 차례! 자신 있게 키오스크 앞에 섰지만,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아무리 찾아도 '따뜻한 아메리카노(Hot Americano)'는 보이지 않는 겁니다!

'분명 이 정도 가게에 없을 리가 없는데…' 당황한 남편은 급기야 '메가리카노' 카테고리 안에서 '핫(Hot)'을 필사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곳에는 차가운 얼음 그림만 잔뜩 있을 뿐이었죠.

그 순간, 등 뒤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앳된 중학생 소녀들의 '저 아저씨는 또 뭐야?'라는 듯한 눈빛! 등에 화산이 폭발한 듯 뜨거움을 느낀 남편은 결국 패닉 상태에서 '메가리카노' 아이스 두 잔을 급하게 결제하고 도망치듯 가게를 나섰다. 아들의 것과… 자신의 것까지 모두 아이스로!

 

"핫을 아이스에서 찾으면 있냐!"

집에 온 후 핫 커피를 나눠마시기 위해 기다리던 부인에게 아이스 커피 두 잔을 건넨 남편은 예상대로 '구사리'를 들었다.

"아니, 핫 커피를 사 오랬더니 이게 뭐야?"

"아니, 거기에 '핫'이 없더라고! 메가리카노 밑에는 아이스밖에 없었어!"

이 상황을 지켜보던 아들마저 한 마디 거들었다.

"아빠! 메가리카노는 그냥 아이스 큰 거잖아! 핫을 거기서 찾으면 당연히 없지! 그냥 '아메리카노' 카테고리를 눌렀어야지!"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남편은 "평생 배워야 하는 시대"라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첨단 기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중년의 서글픔이 다가오는 순간.

 

남편의 '메가리카노 대참사'는 단순히 커피 한 잔을 잘못 산 해프닝이 아니다. 이는 급격하게 스마트화되는 사회에서 중년 세대가 겪는 디지털 소외(Digital Exclusion)의 단면이다.

 

오늘날의 사회는 키오스크, 모바일 앱, 온라인 주문 등 '스마트'를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움직인다. 이로 인해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에게는 단순한 주문 행위조차 큰 장벽이 될 수 있다.

 

평생을 아날로그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일해왔던 이들은, 이제 식당 메뉴 하나를 주문하기 위해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학습해야 하는 시대이다. "평생 배워야 한다"는 말이 웃프게 들리는 이유다.

 

키오스크는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사람 사이의 따뜻한 눈 맞춤이나 "따뜻한 아메리카노 드릴까요?"라는 친절한 질문이 없다. 중년들이 뒤통수가 뜨거워지며 당황하는 것은, 단순히 기기를 못 다루는 것을 넘어 타인의 시선과 조바심 속에서 소외되는 느낌 때문일 수 있다.

 

이 시대는 분명 빠르고 효율적인 발전을 추구하지만, 그 속도에 맞추지 못하는 이들을 배려하는 '느린 길' 또한 마련되어야 한다. 기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50대 남편이 뒤통수가 뜨거워지는 대신 웃으며 따뜻한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사회가 진정한 스마트 사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