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남부뉴스 김정옥 기자] 2026년의 문은 산에서 열렸다. 새해 첫 일출을 맞기 위해 회사 동료들과 함께 수원과 화성의 경계를 잇는 칠보산으로 향했다.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산은 이미 깨어 있었고, 인근 도로는 차량들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새해를 향한 간절함이 차 있었을 것이다. 아침 7시, 출발. 돌계단을 밟으며 군중 속에 섞여 제3전망대로 오른다. 숨은 차오르지만,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다. 7시 30분, 탁 트인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동이 트기를 기다린다. 찬 공기 속에서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7시 45분, 마침내 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붉은 빛이 하늘을 밀어 올리고, 사람들은 한해의 소망을 바라며 해를 바라본다. 그 순간, 한 젊은 아가씨가 동영상을 찍으며 큰 목소리로 외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서로 화답을 한다. 낯선 이들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 같은 해를 바라보는 마음은 똑같았다. 해를 뒤로 한 채 하산해 떡국으로 새해 첫 끼를 나누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1월 3일 토요일 새벽,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산과 더 가까워지는 여정이었다. 성대역에서 명학역까지 전철로 이동해 6시 5
2026년은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다. 말은 멈춰 서 있는 존재가 아니다. 방향이 정해지면 속도를 얻고, 속도가 붙으면 되돌리기 어렵다. 그래서 말은 언제나 선택과 책임의 상징이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말을 한다. 생각보다 먼저 튀어나오고, 의도보다 앞서 습관처럼 반복된다. 그러나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말은 습관이며, 태도이고, 마음이다. 무심코 내뱉은 말 속에는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자세와 스스로를 평가하는 기준이 담겨 있다. 체념을 말하면 삶은 움츠러들고, 결단을 말하면 삶은 그 말에 반응한다. “나는 원래 그래.” “나는 못해.” “시간이 없어서.” 이 말들은 설명이 아니라 방향 지시다. 한 번 말해진 언어는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행동의 범위를 정한다. 우리는 늘 스스로에게 허락한 말의 크기만큼만 살아왔다. 붉은 말은 힘이 세다. 그러나 그 힘은 자동으로 좋은 곳을 향하지 않는다. 어디로 달리게 하느냐는 고삐를 쥔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올해는 더 바쁘게가 아니라 더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피하지 않겠다고. 멈추지 않겠다고. 이 길은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신년은 계획이나 각오를 늘어놓는 시간이 아니다. 언어를 점검하는 시간이다.
[경기남부뉴스 김정옥 기자] [잠깐!] 예부터 강릉 경포대에는 '다섯 개의 달'이 뜬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하늘에 걸린 달 하나, 동해 바다에 일렁이는 달 하나, 거울 같은 경포호에 잠긴 달 하나, 그리고 마주 앉은 이의 술잔과 그 사람의 눈동자에 비친 달까지 다섯이다. 이처럼 경포대는 어둠 속에서도 찬란한 낭만을 찾아냈던 선조들의 풍류가 깃든 곳이다. 하지만 2026년 새해 아침, 우리가 그 다섯 개의 달이 머물던 자리에 다시 선 이유는 그 모든 달빛을 품고 솟아오를 단 하나의 '태양'을 보기 위함이다. 올해 경포대의 새벽은 유독 자비가 없었다. 살을 파고드는 매서운 바닷바람과 영하의 기온은 뼛속까지 시리게 했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많은 이들의 발길이 있었다. 차가운 공기를 뚫고 수평선 너머 솟아오를 ‘첫 일출’을 마주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추위를 넘어선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 소리는 새해를 알리는 거대한 북소리 같았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자신을 던져 길을 만들고 있었고, 그 힘찬 소리에 나의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있던 묵은 고민들을 파도에 실어 보냈다. 차가운 바다 위에 마침내 동해 수평선 너머로 붉
[경기남부뉴스 김정옥 기자] 2025년 1월 2일, 새벽의 어둠을 뚫고 선 선자령.살을 에듯 몰아치는 강풍 속에 홀로 서서 맞이한 그해 첫 일출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해를 살아낼 나 자신에게 건네는 무언의 약속이자, 거대한 자연의 숨결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겸허한 의식이었습니다. 그렇게 나의 2025년 산행은 시작되었다. 평일의 루틴이었던 서수원 칠보산은 고단한 일상의 숨구멍이 되어주었고, 주말이면 전국의 명산들을 찾아 길을 떠났다. 수리산의 임도길부터 관악의 능선, 광교와 백운의 부드러운 흙길까지, 산은 매 순간 다른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던 영남알프스와 한탄강의 얼음길을 지나, 봄꽃 흐드러진 남해 금산과 계룡산의 비경을 눈에 담습니다.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지던 여름날에는 충북의 14대 명산을 차례로 섭렵하며 한계를 시험했고, 가을날 북한산과 도봉산의 오색 단풍 속에서 백두대간의 웅장한 허리를 지났다. 특히 지난 6월, 민족의 영산 백두산서파와 북파 코스를 통해 마주한 천지의 푸른 빛은 가슴 깊은 곳에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이어 8월의 끝자락, 동료들과 땀 흘리며 완주한 지리산 성중종주(성삼재~중산리)
[경기남부뉴스 김정옥 기자] 남도 들녘의 겨울은 겉보기에 멈춰 있는 듯하지만, 그 차가운 흙 아래서는 치열한 생명의 사투가 벌어진다. 주인공은 바로 가을보리다. 대지의 온기가 가시기 전인 10월 말, 논밭에 뿌려진 가을보리는 영하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겨울을 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월동'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이다. 혹독한 추위를 통과하지 못한 보리는 결코 단단한 줄기를 세울 수도, 알찬 결실을 맺을 수도 없다. 가을보리의 서식지는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등 남부·중부 내륙 지역에서 주로 재배된다. 벼 수확 후 논이나 밭에서 파종하며, 10월 중하순~11월 초에 씨를 뿌려 이듬해 5~6월에 수확한다. 보리는 크게 가을보리와 봄보리로 나뉜다. 2월에 파종해 따스한 봄볕 아래서 자라는 봄보리는 성장이 매끄럽고 화려하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의 깊은 풍미를 닮은 쪽은 단연 가을보리다. 가을보리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제 몸의 수분을 스스로 줄이고 농도를 높이는 전략을 택한다. 생존을 위해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본질에만 집중하는 응축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 곁에는 봄보리처럼 탄탄대로를 걷는 이들도 있다. 고난 없는 성장과
참 잘했어요. 오늘도 버텨준 당신 오늘도 함께 해준 당신 오늘을 살아내 준 당신 참 잘했어요. 도장 찍어 줄게요.
이 물이 이 아이를 아프게 한다 한쪽에는 마실 수 없는 물을 짊어지고 걷는 아이가 있다. 그 물은 투명하지도, 깨끗하지도 않다. 그러나 아이에게 선택지는 없다. 살아남기 위해, 병이 될 것을 알면서도 물을 긷는다. 이 물은 아이를 살리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망가뜨린다. 다른 한쪽에는 넘쳐나는 물의 세계가 있다. 비만한 남자는 바닥에 떨어진 생수병을 내려다본다. 물은 충분하지만, 그의 몸은 그것을 줍지 못할 만큼 이미 과잉에 잠식돼 있다. 이곳에서 물은 생존이 아니라 소비이고, 필요가 아니라 방치다. 이 두 장면은 물 부족의 현실을 감성으로 호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잔인할 만큼 정확하게 말한다. 문제는 물의 양이 아니라, 물이 흘러가는 방향이라고.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물을 짊어지고, 누군가는 아무 대가 없이 물을 버린다. 아이의 병든 몸과 남자의 무력한 몸은 결국 같은 질문을 향한다. 우리는 정말 물이 부족한 사회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불평등을 정상으로 소비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사전적 의미의 항복은 적이나 상대편의 힘에 눌리어 굴복함이다. 전쟁에서의 항복은 단순한 정치적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패배감과 죄책감, 그리고 되돌릴 수 없다는 절망을 감당하는 일이다. 한 나라의 깊은 자기 붕괴의 순간이다. 전쟁을 지속할 힘도 명분도 사라졌지만, 그보다 더 잔혹했던 사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항복이 있다. 탕자의 이야기이다. 오만으로 똘똘 뭉친 그는 아버지께 받은 재산을 기생과 함께 지내면서 탕진하고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 걸 깨닫는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는데 돌아갈 수 있을까?’ 옳다고 믿었던 자신을 내려 놓는 순간, 그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그의 ‘무조건 항복’이다. 탕자의 비유가 끝을 맞이하는 방식은 달랐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달려가 껴안고 잔치를 벌인다. 그에게 ‘과거의 죄’보다 ‘돌아온 선택’을 더 크게 보았기 때문이다. 참되고 아름다운 항복이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항복의 의미이다. 전쟁의 상처와 탕자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시대, 다른 맥락에 존재하지만, 하나의 질문을 던진
[경기남부뉴스 김정옥 기자] 비가 촉촉이 내리는 12월의 토요일 오후. 50대 중년 남편은 등산 후, 손에 쥔 유한킴벌리 발 2,000원짜리 메가커피 쿠폰을 들고 메가커피 전문점 앞에 섰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은 자신을 위한 보상,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아들을 위한 특명.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남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두 명의 중년 여성. 이분들은 가게 입구를 점령한 첨단 병기, 키오스크(Kiosk) 앞에서 마치 암호를 해독하듯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게 어디 있는 거야?" "아니, 분명 아메리카노랬는데… 메뉴가 왜 이렇게 많아?" 손가락은 허공을 헤매고, 눈동자는 갈 곳을 잃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 역시 마음속으로 외쳤다. '남의 일 같지 않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중년 부인들은 마침내 미션을 완수하고 서로 대견하다는 듯 웃으며 다음 타자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드디어 남편 차례! 자신 있게 키오스크 앞에 섰지만,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아무리 찾아도 '따뜻한 아메리카노(Hot Americano)'는 보이지 않는 겁니다! '분명 이 정도 가게에 없을 리가 없는데…' 당황한 남편은 급기야 '메가리카노' 카테고리
[염미영 작가] 대한민국의 인천국제공항에서 8시간의 비행으로 도착한 곳은 콜롬보공항이다. 콜롬보(Colombo)는 스리랑카의 최대 도시이면서 행정수도이다. 지구본(지구의)를 돌려보면 한반도에서 왼쪽으로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반도를 지나 인도라는 커다란 대륙이 나타난다. 인도라는 나라의 끝자락에 자세히 살펴보면 흡사 고구마 모양의 섬( 필자의 눈에 느껴지는 형상)이 매달려있다. 바로 이 국가가 스리랑카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도의 동남쪽에 있는 실론 섬에 위치한 섬나라이다. 어렴풋이 중고등학교 때 배운 단편적 지식으로 연상되는 것이, 스리랑카라는 국가는 불교적 , 가축 소를 숭배한다는 것, 우리나라보다 경제적 상황이 상당 어려운 농업국가라는 생각으로 알고 있고 있었다. 2024년까지 스리랑카를 수차례 다녀온 사진작가(한국사진작가협회 용인지부 박대병 회원)의 개인사진전을 보고와서 본 작가는 ‘스리랑카’라는 국가의 매력적인 점을 알게되었고 언젠가는 꼭 가서 담아보고 싶은 해외촬영 국가로 마음먹고 있었다. 불과 6개월 정도의 준비기간을 마련하고 스리랑카를 담아보고픈 사진작가 16명이 의기투합하여 9박10일 동안의 여정을 실행에 옮겼다. 매년 11월은 스리랑카의
“아빠, 100원만!” 8살 코흘리개였던 하루 나의 용돈은 100원. 오후반 수업이 끝나고 국민학교 교문을 나오면, 학교 앞 줄 지어선 7개의 문방구로 달려갔다. 그 시절 문방구는 우리에겐 종합 복합 엔터테인먼트 스타필드였다. 종이인형, 구슬, 뽑기, 그리고 동네 최고의 ‘전문가’ 달고나 아저씨가 있었다. 하얀 설탕을 국자에 올리고 나무젓가락 끝에 소다를 찍어 두 번 휘휘 저으면, 설탕이 마법처럼 부풀어 올랐다. 고도의 집중 속에서도 별 끝이 ‘톡’ 떨어져 나간 순간, 부풀던 내 마음도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문방구의 양대산맥 뽑기. 여러 번 꽝의 패배 끝에 5등이라도 당첨되면 작은 나비모양의 설탕사탕을 먹을 수 있었다. 하늘이 도운 것일까? 대왕 잉어 모양이 나올땐 그날은 말 그대로 대박! 얇지만 큼직하고, 색깔은 주황빛과 노란빛을 섞은 투명한 광택. 잉어 비늘이 눌린 무늬 그대로 살아 있고 손에 들면 햇빛이 비쳐 반짝였다. 금방이라도 헤엄칠 거 같은 왕 잉어. 그걸 손에 쥐는 순간, 나는 그날의 왕! 명품백을 메듯 100원으로 초호화 득템을 하는 순간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눈빛이 쏟아지고, 나는 잉어 꼬리부터 천천히 아껴 먹으면서 집까지 쭉 으스
[경기남부뉴스 김정옥 기자] 거리 곳곳에 서 있던 주황색 공중전화기를 기억하는가. 그 작은 부스 안에서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넣던 그 순간의 설렘을. 때론 앞사람의 통화가 끝나길 길게 기다리며, 손에 쥔 동전을 굴려가며 초조하게 서 있던 그 시절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집에 연락할 일이 생기면 주머니 속 10원짜리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가장 가까운 공중전화를 찾아 헤맸다. 수화기에서 들리는 "삐삐삐" 소리와 함께 동전이 떨어지는 청량한 소리는 소통이 시작되는 신호였다. 공중전화 부스는 작은 비밀 공간이기도 했다. 투명한 벽 너머로 사람들이 지나다니지만, 그 안에서는 오롯이 나와 상대방만 존재했다. 첫사랑에게 용기 내어 전화를 걸던 날,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누르고 기다리던 그 순간들. 급한 ‘삐삐’ 호출을 받고 전화기를 찾아 헤메던 기억들. 지금은 오롯이 기억 한구퉁이에 작은 방 하나를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 와든 연결될 수 있지만, 그때는 달랐다. 공중전화를 찾아야 했고, 동전이 있어야 했고, 상대방이 집에 있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 불편함 속에 오히려 진정한 소통의 가치가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