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마음이 차오르는 곳 관악산 연주암 비는 하늘의 명을 받아 아래로 흘러 바다를 찾아간다고 했다. 그 고단한 여정 누가 회포를 풀어줄까? 가을 끝자락에서 나선 우중산행(雨中山行), 관악산 연주암으로 향하는 그리운 발걸음이었다. 연주암은 677년(문무왕 17)에 의상(義湘:652~702)이 창건한 절이다. 의상은 관악산 최고봉인 연주봉 절벽 위에 의상대를 세우고 그 아래에 절을 짓고 관악사(冠岳寺)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 이후부터 고려 말까지는 거의 폐사되다시피 하다가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의상대와 관악사를 중수하고는 조선왕조의 번창을 기원하는 200일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이후 그의 처남인 강득룡이 연주대라고 불렀다. 이곳에서 송도(松都)를 바라보며 무너져 가는 고려왕조를 연모하면서 통곡하였는데 이 때문에 ‘주인을 그리워하다’ 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 연주대라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조선 태종 때 양녕대군에 얽힌 이야기이다. 양녕대군은 왕위를 물려받을 적장자임에도 불구하고 갖은 기행으로 인해 태종의 눈 밖에 나서 폐세자로 물러났다. 동생인 충녕에게 보위를 양보하고 전국을 떠돌던 양녕대군과 불교에 귀의한 효령대군이 이곳에 머무르면서 연주대의 이름을
지난 29일 서울 거리 한복판에서 축제를 즐기던 156명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서울 용산구 다목적 실내 체육관 안에는 가방 124개, 옷 258벌, 소지품 156개, 신발 255켤레, 짝 잃은 신발 66개...주인잃은 물건이 가득 놓였다고 한다. 친구들과 나갔다 올게_ 집을 나서며 건넨 그 말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몰랐다는 부모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식을 잃은 애비는 하늘을 보며 울었고, 어미는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오열했다. 이태원 상가의 한 주인은 황망한 젊은이들의 죽음 앞에 넋이라도 달래고 밥 한 숟갈 떠먹여 보내야 하지 않겠냐며 생면부지 젊은 넋들을 위한 젯상을 차렸다. 어느 시민은 거리에 누워 뻣뻣하게 굳어가는 모습에 마지막 가는 길 힘들지 않길 바라며 두 손을 가지런히 포개 주었다고 한다. 그저 할로윈 데이라는 거리축제에, 즐거운 하루를 보낼 생각에 친구와 함께 밖을 나섰던 젊은이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차가운 거리에 누웠다. 친구의 영정사진 앞에 말을 잃은 단짝 친구는 오래도록 빈소를 떠나지 못하고 울었다. 골목길에 흩어진 소지품 그리고 옷가지와 신발들... 채 피워보지도 못한 꽃다운 스무 살 젊은이들은 그렇게 거리에서
바다를 향한 나의 첫 출조(出釣)였다. 세상사 연일 들려오는 우울한 뉴스에 젖은 마음 해풍에 널어 말리며 마음 한켠에 묻어두고 언젠가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바다낚시를 하러 길을 나섰다. 낚시객이 많이 찾는 삼척 장호항은 삼국유사 수로부인의 설화에 나오는 헌화가의 발원지란다. 그곳에서 말수는 적지만 친절하고 우직해 보이는 낚시배 선장님을 따라나섰다. 그리 멀지 않은 장호항 앞바다에 닻을 내리고 선장님의 안내에 따라 낚시줄을 드리웠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옅어 보일 정도로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고기를 잡았다 놓아주기를 반복하면서 내가 바다에서 얻은 건 무엇이어야 했을까... 드넓은 바다는 강물을 품고 화해가 무엇인지 일러주었고 낚시는 아마도 기다림과 사색을 일러주는가 보다. 나는 감히 고래의 길을 알지 못하지만, 해면(海面)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속 처럼 경이로웠다. 눈부신 태양이 침전(寢殿)으로 드는 이 시간은 맑다. 그렇게 석양(夕陽)은 육지를 가득 채우고 부끄러운 얼굴을 물들이며 내 마음 가에도 와닿다가 소멸해 갔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겠지만 나는 이런 하루를 얼마나 더 반복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빛나는 계
가을엔 모든 빛이 나뭇잎 위에 모여 반짝거린다. 어깨에 내려앉은 햇살만으로도, 시선을 가득채운 선홍빛 빛깔 만으로도 이 가을은 충만하다. 어김없이 오는 계절의 정직함으로 초록에 지친 제 몸을 선홍빛으로 물들여 가니 그렇게 가을이 왔나 보다. 나뭇잎 하나는 대단치 않아 보일는지 모르겠지만 한점, 한점 그 거대한 자연의 대열 속에 이루는 나뭇잎 하나, 하나는 빛으로 색감으로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아파트 놀이터 뛰어노는 아이들의 재잘거림, 그 웃음소리에도 가을하늘이 담겨있다. 가을하늘에 투영되는 코스모스 꽃잎은 얇은 잠자리 날개를 닮아 가을하늘과 더 어울리는가 싶다.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꽃잎처럼 손을 흔드는 아이를 바라보니 이 가을을 다 가진 듯하다. 가을하늘도 눈부시고, 아이의 웃음도 눈부시고, 눈부신 계절 가을이 가을답듯이 땅 위에 사람도 사람답길 바란다면 욕심일까?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빛나는 계절, 그리고 차가운 바람 속에서 생존권을 위해 사라져 버릴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나무도, 사람도 저 마다의 한점, 한점의 대열속에서 너그러운 계절의 중간쯤에 섰다. 가을 풍경이 가르치는 자리에서 스스로를 돌아본다. 말 못하는 것들에게서 받는 위안의 가을,
서촌, 이상(李箱)의 집을 가다. 경복궁 서쪽마을인 서촌(西村)을 걷다보면 이상의 집이 있다. 그의 본명은 김해경, 이상의 집(서울시종로구자하문로7길18)은 그가 세 살 때 부터 27년의 생애 중 20여년간 머물렀던 집터의 일부이다. 철거될 위기에서 시민과 기업의 후원으로 작가 이상의 작품 혼을 기리기 위해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이상의 작품을 기억할 수 있도록 이상의 작품인 소설과 수필, 그림, 도안, 삽화, 서신을 분류해 연대순으로 관람할 수 있다. 1920년 격변의 시대, 동화(同化)되지 못하는 감성으로 스물일곱의 나이에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조국의 박제된 천재라 불리웠던 청년 이상, 조각과 회화는 물론 시인이자 건축학도였던 이상은 1936년 발표된 소설 ‘날개’를 통해 많이 배웠지만 게으르고 나약할 수밖에 없는 ‘나’라는 주인공을 통해 삶의 무의미와 무의미를 벗어나고자 하는 분열된 자아를 보여 준다. 1930년대는 일제가 전시체제를 구축하면서 민족문화를 탄압, 말살하기 위한 억압정책을 가속화 하던 시기로 세계적으로 공황과 전체주의 파시즘이 대두하던 위기의 시대였다. 세상과 동화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문학으로 통한 웹 소설이 순수문학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웹 소설은 인터넷이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서비스되는 문학 콘텐츠를 말한다. 판타지와 무협, 공포, 로맨스, 추리 등 전통 문학과는 거리가 먼 장르 소설이 주를 이룬다. 과거에는 인터넷이나 사이버 공간에서 게재되는 글, 인터넷 연재소설 등으로도 불렸지만, 국내 대형 포털사인 네이버가 지난 2013년 1월 '네이버 웹 소설'이라는 명칭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웹 소설로 불리고 있다. 웹 소설은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층의 접근성이 수월하다. 또 한, 몇 번의 클릭만으로 다양하고 많은 양의 문학을 쉽게 접할 수 있기에 그 소비시장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3년 100억 원 수준이던 웹 소설 시장 규모는 2014년 200억 원으로 2배 성장했고, 2015년에는 400억 원대에 진입했다. 콘텐츠 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웹 소설 산업매출 규모는 6천억 원대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러한 웹 소설시장은 현재 다양한 콘텐츠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웹 소설의 플랫폼에는 카카오페이지, 네이버웹소설, 문피아, 조아라 등이 있다. 현재 웹 소설 플랫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26일 오전 7시 45분쯤 대전 현대아울렛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졌다.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모두 하청업체나 외부 용역업체 소속 직원들이었다. 허망한 희생과 죽음 앞에 언제까지 인재(人災)라는 이름으로 목도 해야만 하는 비뚤어진 현실은 멈춰질까? 그릇된 반복은 반복될수록 사람을 무디게 하지만 그 상처는 무뎌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왜 이럴까? 늘 예고된 인재(人災) 앞에 명복을 빌어야 만 하는 사회, 안전 불감으로 인한 그릇된 인재의 반복앞에 앞다투어 대책을 논의하고 안전을 강조하던 수많은 입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시간이 흘러도 늘 똑같이 희생자 앞에 명복을 빌어야 하는 현실에 슬픔을 넘어 분노가 이는 것은 오롯이 유족들만의 것인가? 대전 아울렛 화재 참사는 대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천 쿠팡 물류 센터에도 있고 하청 노동자의 온몸이 깨지고 갈리는 공장에도 있고, 차갑게 식어가는 이주노동자의 비닐하우스 숙소에도 있다. 어디에나 있다. 이윤 앞에 생명을 지우는 어디에나 있다. 안전관리의 총체적 시스템은 기업의 경영에 있어 핵심 목표이어야 한다. 안전과 생명보다 우선하는 사회적 가치는 없다. 지켜지지
태양은 능(陵)위에서 뜨거웠다. 병풍처럼 펼쳐진 소나무 아래에서 융건능의 풍경은 그렇게 눈이 부셨다. 이마를 태우는 햇볕에 땀은 차올랐지만 병풍처럼 능을 둘러싼 소나무와 함께 가을하늘은 닿을 듯 선명했다. 비극을 딛고 일어선 군주 정조, 그는 뒤주 속에 갇혀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을 달래는 화산행차 길에서도 초로의 촌부를 위로했다고 한다. 『정조실록』 1793년(정조 17) 1월 12일의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왕이 현륭원을 뵈러 가는 길에 관왕묘(關王廟)에 들렀다. 과천(果川)에서 주정(晝停)하였다. 인덕원(仁德院) 들녘을 지나다 길가의 부로(父老)들을 불러서 위로하며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저녁에는 수원 행궁에 머물렀다」 역사는 이긴 자에게 미래를 주고 패한 자에게 비극을 준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일까? 역사의 비극은 언제나 허공이 아니라 땅위의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왕 정조 이산(李山), 조선의 마지막 꿈의 군주라 부르고 싶었던 그의 능 앞에서 살아남은 자의 역사는 어떠한가?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의 뒤엉킴속에서 애민을 품고 개혁군주로서 왕도를 실현하려 했던 정조(正祖